성공처럼 보였던 첫 달, 착각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형석(가명) 씨는 퇴직 후 "이제는 나만의 가게 하나쯤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창업을 결심했다. 그는 음식 장사 경험이 전무했지만, 직장생활 내내 쌓아온 기획력과 마케팅 감각이라면 충분히 통할 거라 자신했다. 그래서 ‘SNS에 잘 나올 것 같은 감성 분식집’을 콘셉트로 정하고, 고양시의 한 주택가 골목 상권에 12평짜리 매장을 계약했다.
오픈 전부터 그는 마케팅에 총력을 쏟았다. 인근 맘카페에 사전 홍보 글을 30건 이상 올렸고,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에게 협찬 제안을 하면서 사전 바이럴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오픈 당일에는 줄이 골목 밖까지 늘어섰고, 첫날 매출은 100만 원을 넘겼다. SNS에도 실시간으로 인증샷이 올라왔고, 매장은 지역 맛집으로 빠르게 알려졌다.
형석 씨는 스스로에게 "나는 장사에 재능이 있다"고 확신했다. 첫 주 만에 수십 건의 리뷰와 블로그 포스팅이 쏟아졌고, 그 성과를 수치로 확인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보다 노출 수, 해시태그 수, 팔로워 수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자신이 만든 브랜드가 곧 ‘성공 사례’로 남을 거라 믿기 시작했다.
음식 품질과 서비스는 뒷전이 되었다
두 번째 달부터 형석 씨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이어갔다. 블로그 체험단 모집, SNS 이벤트, 배달앱 할인 쿠폰, 지역 커뮤니티 프로모션까지 총 마케팅 예산은 한 달에 300만 원 이상 들었다. 매출은 1,300만 원을 돌파했지만, 인건비·재료비·임대료·배달 수수료를 빼고 나면 손에 남는 건 채 150만 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손님이 줄지 않는 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조용히 발생하고 있었다. 고객들의 리뷰는 점점 식어갔고, “예쁜데 맛은 그냥 그래요”, “김밥이 미지근했어요”, “직원 응대가 좀 무뚝뚝하네요” 같은 피드백이 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와 첫인상은 좋았지만, 재방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재방문율은 20%도 되지 않았고, 쿠폰 사용 비중이 70%를 넘으면서 실제 매출의 질은 낮아지고 있었다.
형석 씨는 그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요즘 고객들이 너무 예민하다”며 불만을 외면했고, 서비스 교육이나 주방 퀄리티 체크보다 홍보 전략 수정에만 시간을 쏟았다. 매장은 여전히 손님으로 붐비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한 번 왔다가 끝나는’ 고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의 피로도도 쌓였고, 메뉴 누락·대기시간 증가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광고가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했다
세 번째 달, 그는 위기를 감지했지만 대응 방식은 여전히 광고였다. 1+1 이벤트를 재도입하고, 지역 포털과 배달앱 내 프로모션 배너를 추가 구매했다. 하지만 반응은 기대에 못 미쳤고, ‘이벤트만 하면 반짝’하는 흐름이 반복되면서 점점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해졌다.
고객들은 피로감을 드러냈다. “처음에 비해 질이 떨어졌다”, “이벤트 없으면 안 가요”라는 말들이 커뮤니티에 돌기 시작했고, 배달앱에는 “포장 상태 엉망”, “1시간 넘게 걸렸다”, “주문 누락됐다”는 리뷰가 올라왔다. 별점은 3.0까지 떨어졌고, 상단 고정된 리뷰는 부정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
문제는 배달만이 아니었다. 매장 방문 고객에게도 불만이 누적됐다. 식재료 수급에 차질이 생기고, 인기 메뉴가 자주 품절됐다. 냉장고 관리가 허술해 유통기한 임박 재료가 그대로 조리되는 경우도 있었다. 형석 씨는 이를 알고도 “다른 집도 다 이런 정도는 된다”며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고객들은 기억했고, 온라인에 그대로 남겼다.
그는 직접 배달을 시작했고, 홀과 주방을 혼자 오가며 운영을 버텼다. 하지만 점점 체력적 한계를 느꼈고, 직원은 퇴사했고, 손님은 줄었으며, 리뷰는 계속 나빠졌다. 다섯 번째 달에는 카드값도 연체되었고, 공급업체에도 외상이 밀려 납품이 중단됐다.
결국 무너진 것은 신뢰였다
여섯 번째 달, 그는 폐업을 결심했다. 매출은 하루 15만 원 수준으로 추락했고, 광고도 끊겼으며, 재료는 떨어졌고, 가게는 더 이상 운영이 불가능했다. 마지막 날까지도 그는 SNS 이벤트를 시도했지만, 손님은 오지 않았다. 단골이 없었고, 재방문이 없었고, 지역 커뮤니티에서는 “문 닫는 거 당연하다”는 말만 돌았다.
그는 점포 매물을 부동산 사이트에 올리며 설명을 이렇게 남겼다.
“SNS 인지도 높았던 매장. 감성 마케팅에 최적화된 위치.”
하지만 누구보다도 그는 알고 있었다. 겉만 번지르르했던 매장이었다는 걸. 고객 경험이 없었고, 신뢰가 없었고, 운영 시스템이 무너진 상태에서 홍보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폐업 이후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땐 무조건 사람만 많이 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알아. 한 번 온 사람이 다시 오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와도 소용없다는 걸.”
자영업의 본질은 유입이 아닌 유지다. 사람을 끌어오는 건 쉽지만, 남게 만드는 건 어렵다. 광고는 고객을 데려오지만, 서비스와 품질이 고객을 남긴다. 결국 브랜드는 경험의 총합이고, 가게의 운명은 하루하루 쌓이는 신뢰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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